클리나멘탈만으로도 내겐 너무나 큰 사치일텐데?
by E백작

그러고보니 정준이 일병 한창때이려나


 1년 전 쯤 - 지금은 군대를 가고 없는 친구가, 나에게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이념이 어떤것인지 물어본 일이 있었다.

 

 

 평소에 그 녀석에게 철학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떠들어댔기에, 그 녀석은 그런 질문을 하는 대상으로는 내가 가장 적합하다고 여긴걸까.

 

 

 우리나라 국민은 민주주의하면 성문화된 이념보다는 단지 한줄 글로써 학교에서 배웠던, 남한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 체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들과 분단이란 상황 때문에 우리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의 반대 이념'이란 질문은 -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에 반대되는 이념' 이라는 질문으로 손쉽게 치환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변질되버린 질문이라면, 요즘 세상의 인문학의 살해자들 중 몇몇은 북한의 공산주의를 답으로 제시할지도 모르지.

 

 

 (어떻게보면 대한민국 국민의 가장 큰 슈퍼에고로 자리잡아있을지도 모르는) 그것이 우리 88만원 세대의 바로 윗 세대때 있었던 극렬했던 반공교육의 잔재라고 하면 - 그것은 그 이전의 전쟁의 상흔을 잊고 지나가는게 되고 만다. 그건 안될말이지.

 

 

 어떻게보면 나에게 그걸 물어본 녀석도 인문학의 살해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관념론자면서 노동을 가장 편협한 형태의(혹은 불완전한 - 이름뿐인) 유물론적으로만 인식하는 전형적인 인문학의 살해자.

 

 

 다만 녀석이 나에게 그걸 '물어봤다'는 행위는, 그런 그 녀석의 인문학에 대한 죄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물어봤기에 인문학에 대해 속죄가 되는게 아니야. '물어봄'으로써 '속죄함'을 실천하는 것.

 

 

 여튼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녀석 역시 민주주의의 반대개념에 대해 질문하면서 맨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북한의 공산주의였던것 같다. 차후에 또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처음에 떠오른건 그것이겠지 - 사실, 그 질문을 받았을때 내가 맨 처음 한 생각도 같았으니.

 

 

 이것을 우리들의 슈퍼에고의 장난이라고 치부해버리거나 인문학의 살해자들과 전쟁의 피해자들의 상처가 만들어낸 인공구조물이라고 한다면 - 마르크스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다.

by E백작 | 2008/10/17 19:43 | Clinamen | 트랙백 | 덧글(0)
정형화는 삶에 유익하다


 그저 두리뭉실한 햇무리마냥 그렇게 지내는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렇게 엉성하게 꿰매놓은 실밥은 언젠가 다시 터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해서 흩뿌려질 솜털같은 기억들과 눈물이 두려운거고.


 너는 그냥 그렇게 넘어가면 안될까하지만


 그로 인해 터져오를 증기같은 한숨은 생각해보지 않은걸까?


 그리고는 매번 나를 애매한 애정의 틈새에, 그 행복의 향내를 맡게 하고는


 나를 이렇게나 방황하게 만드는걸.

by E백작 | 2008/10/12 12:05 | 감정적 시뮬라크르 | 트랙백 | 덧글(0)
욱하는 성질 죽이기-로널드 T. 포터 에프론


 

욱하는 성질 죽이기

로널드 T. 포터 에프론 | 전성로 옮김

다연 2007.12.27











 -돌발성 분노: 말 그대로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한 변신과 같은 분노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상실함

 


-화가 빠르고 강력하게 밀려드는 편인가?

-한 번 화가 나면 행동이나 말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화를 내는가?

-화를 많이 내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다, 무섭다, 미친것 같다는 말을 한적이 있는가?

-화가 많이 나면 기억이 끊겨서(술이나 약때문은 제외)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나?

-화가 너무 심하게 치밀어서 다른 사람을 정말 해치거나 죽일까봐 걱정되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협하거나 모욕했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가 불끈 치솟지는 않는가?

-화가 나면 아무리 잠깐이었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때가 있는가?

 

 

 

  -잠재적 분노: 돌발이 갑작스런 태풍이라면 잠재는 주기적으로 오는 예측가능한 카트리나.

                   특정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오랫동안 화가 축적되었을 때 나타난다.

                   피해의식 어떤 사건에 대한 병적집착, 범죄자에 대한 도덕적인 분노와 증오 등등.

 


-예전에 받았던 상처나 모욕이 자꾸 생각나는가?

-과거에 당했던 모욕에 대한 분노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지는가?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에게 복수하는 상상이 강렬하게 들 때가 있는가?

-자신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사람들이 미운가?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속으로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사람들이 알게 되면 많이 놀랄 거라 생각하는가?

-요즘 사람들이 아무 처벌 없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일들을 보면 화가 치솟는가?

-다른 사람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편인가?

-화가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한 짓을 되갚아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상처를 준 적이 있는가?

-자신의 불행이 특정 사람(모임, 단체 혹은 기관)탓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과거에 그만 집착하고 자기인생을 살아"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가?

 

 

 -생존성 분노: 보호 본능이 강해서 먼저 선빵 날리는거. 길가던 사람이 (본인이 느끼기에 이상하게)처다보면 무서우면서 화가 난 감정으로 분노를 폭팔 시킨다. 이 분노 스타일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살아오면서 생명이 심각하게 위헙했던 경헙이 있다. 전쟁터, 성폭행, 교통사고, 학대 기타 등등.

 


-누군가와 싸웠을 때 평상시보다 힘이 더 세진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이 있는가?

-욱하고 성질이 치밀었을 때 나중에 기억나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분노에 찼을 때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심하게 해치거나 죽이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가?

-말싸움을 했을 뿐인데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같은 적이 있었는가?

-사람들이 자신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오해나 피해망상에 시달리는가?

-정말 화가 났거나 무서웠을 때 투쟁 도주 반응(적을 향해 총 쏘면서 튀는 느낌?)이 든적 있는가?

-누가 어깨만 살짝 두드리는 정도에도 심하게 놀라는가?

 


 -체념성 분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통제력을 잃었을 경우에 화가 커지기 시작함. 분노의 촉발이 '무력감'이다. 조승희 사건의 경우에도 이쪽의 분노이다. 자신이 남에게 심한 상처를 받았다고 인지하고 상황을 바꿔보려 하나 결국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며, 점차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고의적인 행동이나 생각없이 한 행동의 죄없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폭팔할 것 같았던 적이 있었는가?

-자신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절망하고 분노한 적이 있었는가?

-혼자서 "이제 도저히 못 팜겠다"거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그것이 설령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이라 해도 너무 화가 나서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못 견뎠던 적이 있었는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고 바닥을 치고, 물건을 부수거나 악을 쓴 적이 있는가?

-자신을 통제하거나 지배하려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거나 폭력을 쓰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통제력을 잃고 나중에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있는가?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나 사람에게 맹렬한 분노를 느낀 적이 있는가?

-지금은 어떤가? 앞서 이야기한 감정이나 생각이 드는가? 오늘 체념성 분노가 터질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 수치심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위험도가 높다. 이 스타일의 분노에 휩싸인 사람은 절대 '수치심'이라는 말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찝찝하고, 피곤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책의 사례가 이 분노를 이해하는데 더 빠를것 같다. 일이 언제 끝나냐고 누군가가 물을때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이다. 분노의 기저에는 수치심이 있고 이에 따른 보복심리로 분노한다.

 


-비판에 약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 말에 왜 기분 나빠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가?

-사람들이 무례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가 치미는가?

-자신의 평판 혹은 명성을 강경하게 지키려 하는가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처럼 창피를 당하면 화가 많이 나는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혹평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계속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는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나는가?

-자신이 수치심을 화나 분노로 바꾸고 있음을 인지하는가?

 

 

 -버림받음에서 비롯된 분노: 드라마에서 나랑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는 인물을 떠올리면 된다. 이러한 분노는 어린시절 박탈경험이 강하게 작용한다. 사랑이 아니라 분노의 문제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이 질문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나를 사랑하고 아껴야 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의지할 수 있을까?"로 요약된다.

 


-내 보호자들은 힘들 때 내 곁에 없을 것 같다

-나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정말로 내게 잘해줄 것 같지 않다.

-내 보호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

-내 보호자들은 얼마나 안전한지 모르겠다. 그들 자체가 위험한 사람같다

-내 보호자들은 일관되지 않고 변덕이 많다

-내 보호자들은 끝까지 내곁에 있지않고 언젠간 나를 버릴 것 같다

-내 보호자들은 전적으로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것 같다. 내가 눈밖에 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날 사랑하지 않을것 같다.

-사람들과 이 세상은 나에게 위험한 곳이다.








 첫째와 둘째 항목은 내향성 / 외향성에 따른 분류라 생각하고, 세번째에서 여섯번째까지 항목은 배경에 따른 분류라고 생각한다.



 먼저 전자를 모토로 하여 후자가 덧씌워지는 형태겠지.



 그건 그렇고, 초등학교 4학년때를 '어린 시절'이라 부를 수 있는지가 궁금해지는데.



by E백작 | 2008/10/08 11:35 | 감정적 시뮬라크르 | 트랙백 | 덧글(0)
푸코의 권력/지식의 순환과 긍정성

 푸코의 주장에 의하면 지식은 '진술'이 생산되고 규제, 분배, 순환하는 체계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권력은 지식을 생산하며, 지식은 권력의 효과를 강하게 만들고, 권력은 또다시 지식을 확대 재생산하는 순환구조를 가졌으며, 이러한 권력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을 기존 학문과는 다르게 지식을 생산하면서 미시적으로 펼쳐진 것으로 해석한 푸코는,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가정, 법, 학교, 병원 등의 장소에서 권력이 발생하고 개인이 스스로 통제하게 만드는지를 탐구하면서 자신은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의 기원을 밝혀내어 그것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푸코가 제시한 권력/지식의 순환을 토대로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푸코와 같은 권력과 지식의 결합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이미 논의되었던 것인데,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바로 그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거나, 통치자가 철학을 배움으로써 권력과 지식이 합일되고 이상적인 국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전사는 전사의 임무를, 노동자는 노동자의 임무를 다하며 통치자의 판단에만 따르며 장애인 같은 소수자는 격리시키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 한계가 드러났지만, 플라톤의 권력/지식의 합일은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근대의 절대왕정들이다. 그렇다면 절대왕정은 어떻게 지식과 권력을 순환시켰는가.


 근대의 절대왕정은 권력으로 진리를 생산해 주었지만, 권력을 강화시키는 지식을 선별하여 수용하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처음에 왕에게 바쳐졌지만 왕은 이 책을 무시하였다. 절대왕권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홉스의 이론은 군주가 국가구성원들의 권리 양도 동의가 있어야 주권을 소유한다는 주장 때문에 절대왕권으로부터 오히려 배척받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절대왕권은 지식을 선별적으로 추려내어 권력화하고, 그러함으로써 권력/지식의 집중화, 단독화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떠한가. 절대왕정의 붕괴와 유럽을 강타한 대혁명 이후 우리는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사회주의가 득세하는 것들을 목격해왔다. 이러한 각각의 이념은 지식에 대해서 어떤 작용을 가지는가. 일단 이들 역시 권력과 지식의 순환 가운데 선별과정을 거친다. 북한과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적인 발언을 하면 바로안기부에 끌려갔던 것처럼, 초기엔 이들 역시 지식의 선별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의 권력/지식순환이 절대왕권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이념들은 권력/지식이 집중화되지 않고 철저히 세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대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대로 나름의 권력/지식의 순환을 가졌고,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정보소통과 교육의 발달로 인해 개개인의 발언력이 강해짐에 따라 그러한 권력/지식은 점차 세분화 되어 갔다. 푸코가 논한 권력/지식의 세분화는 그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권력과 지식의 순환이 점점 더 생산적으로 바뀌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절대왕정의 붕괴이후 제한된 순환을 가지면서 체계를 유지하던 권력/지식의 순환은 점차 분화되었고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게 권력/지식 순환의 생산성은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여기에 답하기 위해선 합리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데, 칸트나 헤겔의 합리성의 정의를 따르면 합리성은 타자와의 관계속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제한으로써 합당성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자본주의가 합리성을 포획하면서 그것은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로써 합리성을 개인의 이익의 극대화로 만들어버렸다.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푸코의 권력/지식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으로 볼 때 불합리하다. 권력/지식이 미시화 됨으로써 예전의 절대왕권처럼 권력을 가진 자의 일괄적인 통치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적인 합리성으로써 본다면 이는 합리적이라 부를 수 있다. 권력/지식의 미시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는 권력/지식의 순환은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권력/지식순환이 정신에 대한 신체 내지는 기관의 강제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는 것은 정신 또한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신체와 정신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닌, 서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권력/지식이 무조건적인 강제성을 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둘의 상호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철학이 논의되고 사회가 바뀌어왔던 것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전체적 의미의 권력은 사실상 근대적인 권력의 산물인 것이다. 이는 미시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보완될 것이며 어느 순간의 강렬도를 넘어설 때, 권력은 완전히 미시화될 것이고 그동안 우리의 관념 속에 있던 전체적 권력의 개념은 사실상 해체될 것이다.

by E백작 | 2008/10/07 19:19 | 강렬도 이전의 시니피앙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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